산서의 수공예

산서의 수공예

 

광령전지


광령전지는 중국민간에 알려진 3대유파의 하나이다.생동한 구도와 흡사한 표현력,그리고 연구를 거친 재료 사용과 염색,정교로운 포장제작공예로 독보적이며 중국전지중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화민간예술일절”이라는 칭호를 받았다.2009년 광령전지는 중국전지의 부분 신고항목으로 유엔유네스코의《인류비물질문화유산대표작명록》에 등록하게 되였다.


광령전지는 칼로 선지를 새기고 색갈을 올려 만들어진 채색전지이다.중국3대유파중 화북유파에 속하는데 화북유파에서도 화룡정점의 작품이다.전지예술이라는 공통한 특성이 있는 외에도 사의성,상징성,의상화,혁신성,시대성이 있으며 그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광령전지를 접하다보면 감상하게 되는것이 전지만이 아니라 문화기초,경제적성공과 실천을 엿볼수 있다.대시장산업운영방법으로 문화영역에 들어서게 되였고 브랜드를 창조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이끌어가니 정말로 매우 큰 계발의의가 있다.


대동 매조


대동은 전국에서 이름난 석탄의 고향으로 여기에서 대량의 석탄이 생산된다.석탄은 연소되여 우리에게 따스함을 안겨줄뿐만아니라 오래동안 알려진 예술형태로 세인들앞에 조용히 “매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석탄에 천태만상의 형상을  부여하였을때 초자연적인 예술생명력도 우리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석탄조각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공예미술품이며 대동에서 산생되였다.대동매조는 대동석탄층에서 나오는 수화석을 원료로 세심하게 다듬어 만드는것이다.작품은 문양이 똑똑하고 석질이 부드러우며 진정으로 석탄에 예술생명을 부여한것이다.석탄조각작품은 우리나라 동한시대에 이미 기재된 기록이 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한조각의 돌석탄에 산서의 대동민간예술가인 시옥평은 정성스레 조각하여 생생하게 살아있는 예술품을 만들었다.운강대불,위인,마조,하나하나의 작품은 흑백사진을 찍은것마냥 생동하다.올해 제1기 운강관광절기간에 국내외 여행객들앞에 전시된후 모두들 손에서 놓기 아쉬워 할 정도여서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선물할수 있는 좋은 공예품으로 되였다.현재 매조는 이미 대동인민들이 자랑스럽게 국제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고 각종 공예품들이 국내외시장에 판매되여 해내외여행객들이 수장할수 있는 서향묵보의 애장품으로 되였다.


고평비단


고평은 비단의 성지로서 비단의 원산지가 바로 산서 고평이다.비단은 제일처음 고평시 서북산구의 현곡에서 만들어졌다.고평비단은 진동남의 특산으로 우질 누에실을 원료로 하였으며 역사가 유구하고 정교로운 공예와 부드럽고 밝으며 여리고 가벼운 4대특색을 갖고 있다.품종이 많고 아름다음으로 으뜸간다.새중국 조기역사학자 범문란 선생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고평은 예전에 현씨현이라고 불리웠다.그곳에는 현수라는 강이 있었는데 현수강반이 바로 우리나라 비단의 발생지이다.”


평요추광칠기


평요추광칠기는 당조시기 개원년간에 시작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1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1917년 평요성내의 칠공 교생단,임모림 등 여섯명은  합자 투자하여 “합성포”를 개설하고 칠기생산에 종사하게 되였다.만들어진 칠기는 품질이 뛰여나고 풍격이 독특하여 대부분 일본,프랑스로 수출하였다.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후 생산을 정지하게 되였다.50년대후 평요칠기는 다시 한번 고목에 꽃을 피워 빛을 보게 되였다.


추광칠기재료는 식물인 옻나무에서 래원하였기에 사람들은 “로칠” “대칠”이라고 부른다.추광칠기의 제작은 공예가 독특하다.나무재료를 잘 선택한 후 제태하고 다시 돼지피와 벽돌가루로 구멍을 메꾸고 빛나게 간다.그다음 천연옻을 바르고 갈고 여러번 다시 바르고 갈고 하면서 손바닥으로 기름을 발라 위면이 더욱 광택이 나도록 밀고 또 민다.그다음 다시 다듬고 금박을 새기고 채색그림을 넣으면 산과 물,인물,새와 짐승,정자와 누각,기이한 화초등 각종도안이 눈앞에 나타난다.추광칠기는 반짝반짝 빛나고 거울과 같다고 하여 “금칠가구”라고 불리우기도 하였다.표면이 매끄럽고 빛나며 화공의 섬세하고 정교로운 손끝에 의해 색갈과 라인 그리고 필법 모든 면에서 아름답고 선명하며 사용하기 간편하고 견고하다.그리고 내열방습처리를 하였기에 민족풍격과 지방특색이 독특하다.추광칠기는 장식품으로 진렬할수도 있고 실용가치도 있다.


대동예술도자기


대동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역사가 유구하며 이미 1400여년이나 된다.대동도자기업이 가장 흥행한 시기는 당나라시기이다.송나라때 도자기는 군사용으로 씌였는데 그때 “도자기지뢰”는 하나의 군사폭발물이였다.


대동예술도자기는 대동매욕구탄광도자기공장에서 만들어진다.조형이 아름답고 디자인이 새로우며 품종이 많다.특히 민족특색과 지방특색이 다분한 어린이놀이감은 독특하여 인기가 많다.여기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제품은 130여종에 잘하며 몇백가지 색갈을 낼수 있는데 그중에서 대부분은 민족전통과 신화전설에서 나오는 색채를 띤 제품이 많다.“배불뚝이미륵보살”, “장수노인” “선녀가 꽃을 뿌리다” “상아가 달로 가다” “저팔계가 사과를 먹다” 등등을 예로 들수 있다.

 
대동예술도자기는 대동여행공예품중의 진기한 한떨기 꽃으로서 디자인이 새롭고 조형이 아름다우며 품종이 많고 제재가 광범하기로 이름나 있다.


란현면삭

 
란현란성진은 산서성에서 면삭예술의 고향으로서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당지사람들은 기예가 좋고 정교롭게 면으로 빚은 제품을 제작하였다.가축의 잘 자라기를 바라는“가금,가축”,장수를 상징하는“송학연년,장수노인,장수복숭아”,기쁨을 상징하는“여의벽함,물고기가 용문을 뛰여넘기,마상봉후”등이며 역사이야기와 민간전설을 토대로 만든“당승이 불경을 구하러 가다” “팔계가 수박을 도적질하다”“천상배필”“오작교에서 만나기”등이 있다.


면삭품은 제작원료 공예에 귀를 기울이는 반면 주므르고 베고 잘라내고 반죽하고 찝고 누르고 담고 올리고 새기고 조합하며 문양을 누르고 꽃무늬를 새기고 색갈을 배합하는 여러가지면에서 정성을 들인다.


청서흑도자기


흑도자기는 중화민족 고대문화의 보물로서 중화민족 고대의 문화지혜의 결정이다.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에서 유래되였다.춘추전국시기 풍부한 흑도자기예술은 극성하였고 간단한 생활용품부터 고풍,정중,우아,정교로운 예술품으로 발전하여 역대의 제왕,관료,귀족들이 감상하는 진품으로 되였다.흑도자기예술품은 독특한 예술풍격으로 동서방인들이 감탄을 자아냈다.흑도자기는 정중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보여주기도 한다.특히 내포하고 있는 심오한 의미에 대하여 중국고대 도학가,사상가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내가 싸우려고 하지 않으면 천하에 싸울 자가 없다. ”흑도자기는 중화민족의 고대문화의 상징으로 당과 국가의 중시를 받게 되였다.나라에서는 흑도자기를 귀중한 선물로 외국친구들에게 드리고 외교부에서도 흑도자기 공예품을 국가 예품으로 규정하였다.


태원옥조


태원옥조는 역사가 유구하고 조각공예가 정교롭고 부드러우며 사용하는 원료석질이 아름답고 산품종류가 다종다양하다.이것은 태원고대문화의 상징일뿐더러 태원인민들의 지혜의 결정이기도 하다.   


태원옥석은 자원이 풍부하다.가까운데로 말할라치면 루번현에서 옥을 생산하고 진중지구의 우현에서도 난옥,강옥을 생산하며 멀리로는 진남의 하현에서 벽옥을,임분향에서는 마노를 생산하므로 태원옥조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발전할수 있었던 주요원인이다.


태원옥조는 천연옥석을 재료로 하는데 재료에 맞게 소재를 고르고 공예를 더한다.옥조대사들은 정교로운 칼조각으로 색상,모양,형태면에서 최고의 공예미술품을 만들어낸다.근년래 태원옥조는 새로운 발전을 하고 있는데 명승고적,꽃,인물 등 방면에서 태원옥조의 전통적인 수법을 계승하는 한편 대담하게 개혁하여 더욱 높은 예술경지에 도달하는 많고 많은 옥조신제품을 내놓았다.


오대산벼루


오대산벼루는 돌벼루,단벼루라고 불리웠다.재료를 문산에서 가져온다고 하여 문산돌벼루라고도 불리웠다.벼루돌을 생산하는 산맥명칭이 모두 부동하고 행정구역 변동이 있었기에 대벼루,단벼루,봉벼루,순벼루 등 여러가지 명칭이 있었다.청나라시기 안찰사 김사가 벼루를 찬양하는 《순벼루명》을 썼다.그러나 오대산의 명성이 높기에 대벼루라는 명칭이 계속 전해져 내려오고 다른 이름들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오대산벼루 재료는 흑,록,홍,자 4색으로 되였다.칠흑,녹엽,홍단,자간과 같이 색갈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돌벼루는 명나라시기로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였는데 단벼루,봉벼루,순벼루 각각 다르다.대벼루문양은 오대산의 고결하고 지조가 높은 노송나무 잎과 같이 산뜻하고 강건하며 외강내유형이다.질이 부드럽고 미끌지 않으며 사용할때 소리가 없고 차다.사용할때 보면 잘 갈아져 농도가 알맞으며 술술 써내려가노라면 마음대로 뜻하던바를 이룰수 있어 학사나 서법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신강운조


신강운조는 오색상운도안을 장식한 칠조각공예제품이다.모양이 고풍스럽고 운치있으며 광택이 있고 정교로운 조각과 도안의 층차가 선명하다.특히 운조안탁은 조용히 10여초간 줄곧 보고 있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채색구름도안이 살아움직이는듯 서서히 움직이고 형상이 너무 생동하여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강주운조공예는 명나라가경년대에 거슬러 올라간다.역대의 가공자들이 부단히 완벽을 추구하여 왔기에 이미 독특한 공예로 이름을 떨치게 되였다.그 제작방법은 다음과 같다.먼저 만들어놓은 목태에 붉은색과 검은색의 옻을 칠한다.일반적으로 70번내지 80번 칠하는데 많게는 100번도 넘게 한다.그리고 예리한 칼로 구름모양을 조각한다.새기
는 칼은 깊이 5미리정도로  칼끝은 앞이 넓고 뒤가 좁으며 칼끝에서 부동한 색갈과 층차의 꽃모양이 나타나 보기에 여러가지 모양의 채색구름과 같다.강주운조는 구조가 정교롭고 매끄러우며 층차가 분명하고 고풍스럽고 순박한 특점이 있으며 청나라 궁전에 많이 진렬되였다.


산서의 수공예

 

광령전지


광령전지는 중국민간에 알려진 3대유파의 하나이다.생동한 구도와 흡사한 표현력,그리고 연구를 거친 재료 사용과 염색,정교로운 포장제작공예로 독보적이며 중국전지중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화민간예술일절”이라는 칭호를 받았다.2009년 광령전지는 중국전지의 부분 신고항목으로 유엔유네스코의《인류비물질문화유산대표작명록》에 등록하게 되였다.


광령전지는 칼로 선지를 새기고 색갈을 올려 만들어진 채색전지이다.중국3대유파중 화북유파에 속하는데 화북유파에서도 화룡정점의 작품이다.전지예술이라는 공통한 특성이 있는 외에도 사의성,상징성,의상화,혁신성,시대성이 있으며 그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광령전지를 접하다보면 감상하게 되는것이 전지만이 아니라 문화기초,경제적성공과 실천을 엿볼수 있다.대시장산업운영방법으로 문화영역에 들어서게 되였고 브랜드를 창조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이끌어가니 정말로 매우 큰 계발의의가 있다.


대동 매조


대동은 전국에서 이름난 석탄의 고향으로 여기에서 대량의 석탄이 생산된다.석탄은 연소되여 우리에게 따스함을 안겨줄뿐만아니라 오래동안 알려진 예술형태로 세인들앞에 조용히 “매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석탄에 천태만상의 형상을  부여하였을때 초자연적인 예술생명력도 우리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석탄조각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공예미술품이며 대동에서 산생되였다.대동매조는 대동석탄층에서 나오는 수화석을 원료로 세심하게 다듬어 만드는것이다.작품은 문양이 똑똑하고 석질이 부드러우며 진정으로 석탄에 예술생명을 부여한것이다.석탄조각작품은 우리나라 동한시대에 이미 기재된 기록이 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한조각의 돌석탄에 산서의 대동민간예술가인 시옥평은 정성스레 조각하여 생생하게 살아있는 예술품을 만들었다.운강대불,위인,마조,하나하나의 작품은 흑백사진을 찍은것마냥 생동하다.올해 제1기 운강관광절기간에 국내외 여행객들앞에 전시된후 모두들 손에서 놓기 아쉬워 할 정도여서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선물할수 있는 좋은 공예품으로 되였다.현재 매조는 이미 대동인민들이 자랑스럽게 국제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고 각종 공예품들이 국내외시장에 판매되여 해내외여행객들이 수장할수 있는 서향묵보의 애장품으로 되였다.


고평비단


고평은 비단의 성지로서 비단의 원산지가 바로 산서 고평이다.비단은 제일처음 고평시 서북산구의 현곡에서 만들어졌다.고평비단은 진동남의 특산으로 우질 누에실을 원료로 하였으며 역사가 유구하고 정교로운 공예와 부드럽고 밝으며 여리고 가벼운 4대특색을 갖고 있다.품종이 많고 아름다음으로 으뜸간다.새중국 조기역사학자 범문란 선생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고평은 예전에 현씨현이라고 불리웠다.그곳에는 현수라는 강이 있었는데 현수강반이 바로 우리나라 비단의 발생지이다.”


평요추광칠기


평요추광칠기는 당조시기 개원년간에 시작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1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1917년 평요성내의 칠공 교생단,임모림 등 여섯명은  합자 투자하여 “합성포”를 개설하고 칠기생산에 종사하게 되였다.만들어진 칠기는 품질이 뛰여나고 풍격이 독특하여 대부분 일본,프랑스로 수출하였다.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후 생산을 정지하게 되였다.50년대후 평요칠기는 다시 한번 고목에 꽃을 피워 빛을 보게 되였다.


추광칠기재료는 식물인 옻나무에서 래원하였기에 사람들은 “로칠” “대칠”이라고 부른다.추광칠기의 제작은 공예가 독특하다.나무재료를 잘 선택한 후 제태하고 다시 돼지피와 벽돌가루로 구멍을 메꾸고 빛나게 간다.그다음 천연옻을 바르고 갈고 여러번 다시 바르고 갈고 하면서 손바닥으로 기름을 발라 위면이 더욱 광택이 나도록 밀고 또 민다.그다음 다시 다듬고 금박을 새기고 채색그림을 넣으면 산과 물,인물,새와 짐승,정자와 누각,기이한 화초등 각종도안이 눈앞에 나타난다.추광칠기는 반짝반짝 빛나고 거울과 같다고 하여 “금칠가구”라고 불리우기도 하였다.표면이 매끄럽고 빛나며 화공의 섬세하고 정교로운 손끝에 의해 색갈과 라인 그리고 필법 모든 면에서 아름답고 선명하며 사용하기 간편하고 견고하다.그리고 내열방습처리를 하였기에 민족풍격과 지방특색이 독특하다.추광칠기는 장식품으로 진렬할수도 있고 실용가치도 있다.


대동예술도자기


대동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역사가 유구하며 이미 1400여년이나 된다.대동도자기업이 가장 흥행한 시기는 당나라시기이다.송나라때 도자기는 군사용으로 씌였는데 그때 “도자기지뢰”는 하나의 군사폭발물이였다.


대동예술도자기는 대동매욕구탄광도자기공장에서 만들어진다.조형이 아름답고 디자인이 새로우며 품종이 많다.특히 민족특색과 지방특색이 다분한 어린이놀이감은 독특하여 인기가 많다.여기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제품은 130여종에 잘하며 몇백가지 색갈을 낼수 있는데 그중에서 대부분은 민족전통과 신화전설에서 나오는 색채를 띤 제품이 많다.“배불뚝이미륵보살”, “장수노인” “선녀가 꽃을 뿌리다” “상아가 달로 가다” “저팔계가 사과를 먹다” 등등을 예로 들수 있다.

 
대동예술도자기는 대동여행공예품중의 진기한 한떨기 꽃으로서 디자인이 새롭고 조형이 아름다우며 품종이 많고 제재가 광범하기로 이름나 있다.


란현면삭

 
란현란성진은 산서성에서 면삭예술의 고향으로서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당지사람들은 기예가 좋고 정교롭게 면으로 빚은 제품을 제작하였다.가축의 잘 자라기를 바라는“가금,가축”,장수를 상징하는“송학연년,장수노인,장수복숭아”,기쁨을 상징하는“여의벽함,물고기가 용문을 뛰여넘기,마상봉후”등이며 역사이야기와 민간전설을 토대로 만든“당승이 불경을 구하러 가다” “팔계가 수박을 도적질하다”“천상배필”“오작교에서 만나기”등이 있다.


면삭품은 제작원료 공예에 귀를 기울이는 반면 주므르고 베고 잘라내고 반죽하고 찝고 누르고 담고 올리고 새기고 조합하며 문양을 누르고 꽃무늬를 새기고 색갈을 배합하는 여러가지면에서 정성을 들인다.


청서흑도자기


흑도자기는 중화민족 고대문화의 보물로서 중화민족 고대의 문화지혜의 결정이다.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에서 유래되였다.춘추전국시기 풍부한 흑도자기예술은 극성하였고 간단한 생활용품부터 고풍,정중,우아,정교로운 예술품으로 발전하여 역대의 제왕,관료,귀족들이 감상하는 진품으로 되였다.흑도자기예술품은 독특한 예술풍격으로 동서방인들이 감탄을 자아냈다.흑도자기는 정중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보여주기도 한다.특히 내포하고 있는 심오한 의미에 대하여 중국고대 도학가,사상가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내가 싸우려고 하지 않으면 천하에 싸울 자가 없다. ”흑도자기는 중화민족의 고대문화의 상징으로 당과 국가의 중시를 받게 되였다.나라에서는 흑도자기를 귀중한 선물로 외국친구들에게 드리고 외교부에서도 흑도자기 공예품을 국가 예품으로 규정하였다.


태원옥조


태원옥조는 역사가 유구하고 조각공예가 정교롭고 부드러우며 사용하는 원료석질이 아름답고 산품종류가 다종다양하다.이것은 태원고대문화의 상징일뿐더러 태원인민들의 지혜의 결정이기도 하다.   


태원옥석은 자원이 풍부하다.가까운데로 말할라치면 루번현에서 옥을 생산하고 진중지구의 우현에서도 난옥,강옥을 생산하며 멀리로는 진남의 하현에서 벽옥을,임분향에서는 마노를 생산하므로 태원옥조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발전할수 있었던 주요원인이다.


태원옥조는 천연옥석을 재료로 하는데 재료에 맞게 소재를 고르고 공예를 더한다.옥조대사들은 정교로운 칼조각으로 색상,모양,형태면에서 최고의 공예미술품을 만들어낸다.근년래 태원옥조는 새로운 발전을 하고 있는데 명승고적,꽃,인물 등 방면에서 태원옥조의 전통적인 수법을 계승하는 한편 대담하게 개혁하여 더욱 높은 예술경지에 도달하는 많고 많은 옥조신제품을 내놓았다.


오대산벼루


오대산벼루는 돌벼루,단벼루라고 불리웠다.재료를 문산에서 가져온다고 하여 문산돌벼루라고도 불리웠다.벼루돌을 생산하는 산맥명칭이 모두 부동하고 행정구역 변동이 있었기에 대벼루,단벼루,봉벼루,순벼루 등 여러가지 명칭이 있었다.청나라시기 안찰사 김사가 벼루를 찬양하는 《순벼루명》을 썼다.그러나 오대산의 명성이 높기에 대벼루라는 명칭이 계속 전해져 내려오고 다른 이름들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오대산벼루 재료는 흑,록,홍,자 4색으로 되였다.칠흑,녹엽,홍단,자간과 같이 색갈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돌벼루는 명나라시기로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였는데 단벼루,봉벼루,순벼루 각각 다르다.대벼루문양은 오대산의 고결하고 지조가 높은 노송나무 잎과 같이 산뜻하고 강건하며 외강내유형이다.질이 부드럽고 미끌지 않으며 사용할때 소리가 없고 차다.사용할때 보면 잘 갈아져 농도가 알맞으며 술술 써내려가노라면 마음대로 뜻하던바를 이룰수 있어 학사나 서법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신강운조


신강운조는 오색상운도안을 장식한 칠조각공예제품이다.모양이 고풍스럽고 운치있으며 광택이 있고 정교로운 조각과 도안의 층차가 선명하다.특히 운조안탁은 조용히 10여초간 줄곧 보고 있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채색구름도안이 살아움직이는듯 서서히 움직이고 형상이 너무 생동하여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강주운조공예는 명나라가경년대에 거슬러 올라간다.역대의 가공자들이 부단히 완벽을 추구하여 왔기에 이미 독특한 공예로 이름을 떨치게 되였다.그 제작방법은 다음과 같다.먼저 만들어놓은 목태에 붉은색과 검은색의 옻을 칠한다.일반적으로 70번내지 80번 칠하는데 많게는 100번도 넘게 한다.그리고 예리한 칼로 구름모양을 조각한다.새기
는 칼은 깊이 5미리정도로  칼끝은 앞이 넓고 뒤가 좁으며 칼끝에서 부동한 색갈과 층차의 꽃모양이 나타나 보기에 여러가지 모양의 채색구름과 같다.강주운조는 구조가 정교롭고 매끄러우며 층차가 분명하고 고풍스럽고 순박한 특점이 있으며 청나라 궁전에 많이 진렬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