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문화

장성문화

장성문화


장성은 고대중국이 부동한 시기에 북쪽변강으로부터 유목부락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건축된 규모가 웅대한 군사공정의 총칭이다.동서남북으로 몇만리나 뻗어있으므로 만리장성이라고도 불리운다.장성은 우리나라 고대노동인민들이 창조한 위대한 기적이며 유구한 중국역사의 견증이다.오늘 중국인민은 장성을 중국의 상징으로 삼고 단결통일하는 토템이다.만리장성과 천안문,병마용은 세인들에게 중국의 상징으로 보여진다.1987년2월 유엔유네스코에서는 장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산서장성은 세계문화유산인 만리장성의 일부분이다.


산서장성은 역사가 유구하고 부동한 시대의 장성을 보존하고 있다.일찌기 전국시기 조무령왕은 외족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장성을 수축했는데 진,한,량진,남북조,수,당,송,명등 조대로부터 청나라와 역대 여러조대에 거쳐 장성을 수축하거나 확건하였다.그중 명나라때 수축공사가 가장 거창하였고 또 완벽했다.현존 장성유적을 조대로 나눠보면 전국장성,동위장성,북제장성,북주장성,수나라장성,송나라장성,명나라장성,청나라장성등으로 구분할수 있다. 그중 흔주시 가람현은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송대장성을 보존하고있다.장성수축은 당시 외래침략을 막고 나라안정 그리고 여러민족문화와 경제의 평화적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장성내외의 각민족의 정치,경제,역사발전의 결과이다.


산서장성유적은 갈래가 많고 장성이 비교적 밀집해 있으며 보존이 잘되였다. 전국시기로부터 명.청에 이르기까지 2천여년에 걸쳐 역대왕조가 산서에 구축한 장성의 길이는 7천여리인데 현재 보존되여 있는것은 3천여리로 주요하게 9개시40여개현(구)에 분포되여 있다.그중 명대장성의 규모가 가장 컸으며 전후하여 154년에 걸쳐 수축하였다.일부 장성은 아직까지도 보존이 잘되여 의연히 산허리와 황하연안,현암절벽우에 구불구불 뻗어있으며 고성성벽과 함께 수백년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곽과 봉화대,적루가 완전하게 보존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서장성은 주요하게 진북각지에 분포되여 있다.그중 특히 대현안문관,편관현편두관,녕무현녕무관 이 세갈래 장성이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있다.안문관은 역사가 유구하고 지리위치가 험준하고 주요하며 관루건축이 웅위롭고 성벽이 웅장하게 뻗어있고 농후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편두관은 봉화대후가 많고 고성성곽이 유난히 많으며 여러갈래로 뻗어있다.특히 장성과 황하가 이곳에서 만나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중화민족의 어머니강과 중화민족상징인 장성이 만나는곳으로서 한층 더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녕무관역사는 경간기간이 길고 인문역사가 응집되여있어 녕무시는 명성으로 불리운다.이3관에는 관,성,곽,요새,봉화,후,돈,대가 별처럼 포진하여 과학적이고 완벽한 군사방어체계를 이루어 고대군사방어 연구의 더없이 훌륭한 교재로 되고 있다.


우리나라 장성건축사상 가장 휘황한 역사를 자랑했던 명조를 예로 들면 북방변방을 공고히 하고 타타르,오이라트족의 남하약탈을 막기위하여 명왕조는 부득불 대규모장성을 수축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명조는2백여년간 통치하는 가운데서 한시도 장성 수축공사를 멈추지 않았다.동쪽의 압록강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가욕관에 이르기까지 1만6천여리의 명조장성중 장성을 따라 9개 변방진을 건설하였다.그중 두변이 산서 즉 대동변과 태원변이다.대동변치소는 지금의 대동시이다.장성관할구역은 동으로 천진현동북쪽 진구대로부터 서쪽으로 편관삼도변으로서 그 길이가 1086리에 달한다.    태원변치소는 편관에 위치하였는데 지금의 편관현동북이다.관할은 덕황강변에서 시작하여 하곡,편관,로영,녕무,안문관,평형관,룡천관(부평서),고관,황유관,황택관을 거쳐 호관에 이르렀는데 그길이가 1천5백여리에 달했다. 명대장성은 주요하게 토목건축과 벽돌건축 두가지종류로서 성벽높이는 5메터이상이며 성곽. 관망대. 마면혹은 적루시설을 갖추었다.수백년의 자연침식과 인위적파괴로 끊어졌다 이어졌다 반복하고 있지만 산등어리에 구축한 성벽은 아직도 구불구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있는 것같다.


청나라시기에는 명왕조장성을 보수한 외에 또 다른 곳에 새로운 장성을 신축했다.청나라 동치년간(1862-1874)에는 북방념군과 서북회민의군의 동진을 막기 위하여 장성을 구축했다.남으로 향녕석비애로부터 북쪽의 영화관에 이르기까지 고산을 등에 업고 황하를 마주하여 험준한 지세에 따라 성곽과 보루 그리고 포대등을 건축하였다.성벽높이는 5메터좌우로 돌로 외벽을 쌓고 앞뒤에 벽체보호와 방탄호를 파고 부분적지대에 포대와 타구,사격구멍을 만들었다.영루는 벽체를 따라 만들고 포대는 성벽 높은곳에 설치하였으며 간격이 170m좌우로 매개포대에서 서로 한눈에 알아볼수있게 하였다. 오늘날 장성유적에 올라보면 여전히 그 옛날의 웅위로움과 전쟁의 포화를 느낄수 있으며 내외장성의 수축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다.외장성의 사호구,득승보,리민보,대동변벽5보루의 진변보,진천보,굉석보,진로보,진하보등 관액,관보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마찬가지로 내장성의 여러 큰 관액 또한 많은 촬영애호가와 호외운동애호가들의 마음속에 성지로 꼽히고있다.


“황하는 굽이굽이 서쪽으로 흐르는데 자새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선회만 하는구나” 명나라 최용의 시-“편두관”--- 이 시를 통해 편두관이 변방에서의 중요한 지위를 말해준다.서쪽편관하를 따라 황하곡지와 이웃하고 동쪽으로 노아산맥북단의 흑타산에 의지한 편두관은 지형이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 편두관이라 불리며 일명 편관이라고도 하는데 명대<외3관>중 제일 서쪽관으로 <외관>의 전략적지위를 갖고있다.


평형관북쪽은 항산,병산,남쪽은 오대산산맥으로 해발1500m이상인데 이곳에 위치한 평형령은 바로 두산사이에 낮은 지형에 솟아있는 부분으로 그 지세가 매우 험준하다. 동에서 서쪽으로 한갈래 오랜 도로가 평형관성을 지나는데 하북평원북부와 산서가 서로 통하는 지름길로서 동쪽으로 북경서쪽의 자형관과 이어지고 서쪽으로 안문관과 잇닿아 서로를  연결해주어 견고한 방선을 이루며 북경서쪽면의 중요한 병풍으로 된다.항전시기의 평형관전역은 일본군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현재 평형관전역유적은 항일전쟁기념지로 되였다.


안문은 “천하9요새”의 제일로 꼽힌다.안문관은 “한명이 지키면 만명을 당하는”요새로서 “밖으로는 대동의 파수꾼이요 안으로는 태원을 지키는 열쇠로서 삼관에 뿌리박고 진나라의 인후가 된다”.안문관흥망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곳에서 발생한 전쟁은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더라도 140여차가 되며 실로 전쟁에서 군사가들이 서로 다투는 요새이기도 하다.녕무관은 “북으로 대동을 막고 남으로 태원을 누르고 서쪽으로 편관에 대응하고 동으로 안문을 지원하는”전략적작용을 하고 있다.성벽은 산세에 따라 만들어졌는데 그산세가 매우 험준하다.명숭정17년(1644년)에 이자성은 동으로 북경에 들어가기 위해 녕무관에서 명나라군대와 쟁탈전을 벌렸는데 역사에서 이를 “녕무관전역”이라 부른다.그때 3관총병 주우길을 격파하여 북경탈취의 장애를 제거하였다.


장성은 중국 역사상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역대 조대의 중요한 군사방어공정으로서 내지의 농경생산경제와 문화를 보호하였고 중화민족의 번영과 안정을 보호하였으며 중화문화가 세세대대로 전해지면서 계승될수 있도록 보호해 주었다.이는 바로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의 기타문명고국과 현저한 차이가 있는것이다.장기적으로 장성문화는 중국인민이 간고분투,단결일치,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발노력하며 모든곤난을 극복하면서 강적과 맞서 싸워나가며 곤난을 이겨내고 평화를 보위하는 장성정신을 지니게 하였다.이러한 정신은 세세대대로 전해지면서 오래도록 보완해가면서 전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보여준다.하기에 중국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등소평은 전세기80년대초 가장 관건적인 시기에 멀리 내다 보고 “중화를 사랑하고 장성을 보수하자”는 위대한 구호를 제출하였으며 인민대중들의 애국열정을 대대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장성문화

장성문화


장성은 고대중국이 부동한 시기에 북쪽변강으로부터 유목부락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건축된 규모가 웅대한 군사공정의 총칭이다.동서남북으로 몇만리나 뻗어있으므로 만리장성이라고도 불리운다.장성은 우리나라 고대노동인민들이 창조한 위대한 기적이며 유구한 중국역사의 견증이다.오늘 중국인민은 장성을 중국의 상징으로 삼고 단결통일하는 토템이다.만리장성과 천안문,병마용은 세인들에게 중국의 상징으로 보여진다.1987년2월 유엔유네스코에서는 장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산서장성은 세계문화유산인 만리장성의 일부분이다.


산서장성은 역사가 유구하고 부동한 시대의 장성을 보존하고 있다.일찌기 전국시기 조무령왕은 외족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장성을 수축했는데 진,한,량진,남북조,수,당,송,명등 조대로부터 청나라와 역대 여러조대에 거쳐 장성을 수축하거나 확건하였다.그중 명나라때 수축공사가 가장 거창하였고 또 완벽했다.현존 장성유적을 조대로 나눠보면 전국장성,동위장성,북제장성,북주장성,수나라장성,송나라장성,명나라장성,청나라장성등으로 구분할수 있다. 그중 흔주시 가람현은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송대장성을 보존하고있다.장성수축은 당시 외래침략을 막고 나라안정 그리고 여러민족문화와 경제의 평화적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장성내외의 각민족의 정치,경제,역사발전의 결과이다.


산서장성유적은 갈래가 많고 장성이 비교적 밀집해 있으며 보존이 잘되였다. 전국시기로부터 명.청에 이르기까지 2천여년에 걸쳐 역대왕조가 산서에 구축한 장성의 길이는 7천여리인데 현재 보존되여 있는것은 3천여리로 주요하게 9개시40여개현(구)에 분포되여 있다.그중 명대장성의 규모가 가장 컸으며 전후하여 154년에 걸쳐 수축하였다.일부 장성은 아직까지도 보존이 잘되여 의연히 산허리와 황하연안,현암절벽우에 구불구불 뻗어있으며 고성성벽과 함께 수백년의 세례를 받으면서 성곽과 봉화대,적루가 완전하게 보존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서장성은 주요하게 진북각지에 분포되여 있다.그중 특히 대현안문관,편관현편두관,녕무현녕무관 이 세갈래 장성이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있다.안문관은 역사가 유구하고 지리위치가 험준하고 주요하며 관루건축이 웅위롭고 성벽이 웅장하게 뻗어있고 농후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편두관은 봉화대후가 많고 고성성곽이 유난히 많으며 여러갈래로 뻗어있다.특히 장성과 황하가 이곳에서 만나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중화민족의 어머니강과 중화민족상징인 장성이 만나는곳으로서 한층 더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녕무관역사는 경간기간이 길고 인문역사가 응집되여있어 녕무시는 명성으로 불리운다.이3관에는 관,성,곽,요새,봉화,후,돈,대가 별처럼 포진하여 과학적이고 완벽한 군사방어체계를 이루어 고대군사방어 연구의 더없이 훌륭한 교재로 되고 있다.


우리나라 장성건축사상 가장 휘황한 역사를 자랑했던 명조를 예로 들면 북방변방을 공고히 하고 타타르,오이라트족의 남하약탈을 막기위하여 명왕조는 부득불 대규모장성을 수축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명조는2백여년간 통치하는 가운데서 한시도 장성 수축공사를 멈추지 않았다.동쪽의 압록강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가욕관에 이르기까지 1만6천여리의 명조장성중 장성을 따라 9개 변방진을 건설하였다.그중 두변이 산서 즉 대동변과 태원변이다.대동변치소는 지금의 대동시이다.장성관할구역은 동으로 천진현동북쪽 진구대로부터 서쪽으로 편관삼도변으로서 그 길이가 1086리에 달한다.    태원변치소는 편관에 위치하였는데 지금의 편관현동북이다.관할은 덕황강변에서 시작하여 하곡,편관,로영,녕무,안문관,평형관,룡천관(부평서),고관,황유관,황택관을 거쳐 호관에 이르렀는데 그길이가 1천5백여리에 달했다. 명대장성은 주요하게 토목건축과 벽돌건축 두가지종류로서 성벽높이는 5메터이상이며 성곽. 관망대. 마면혹은 적루시설을 갖추었다.수백년의 자연침식과 인위적파괴로 끊어졌다 이어졌다 반복하고 있지만 산등어리에 구축한 성벽은 아직도 구불구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있는 것같다.


청나라시기에는 명왕조장성을 보수한 외에 또 다른 곳에 새로운 장성을 신축했다.청나라 동치년간(1862-1874)에는 북방념군과 서북회민의군의 동진을 막기 위하여 장성을 구축했다.남으로 향녕석비애로부터 북쪽의 영화관에 이르기까지 고산을 등에 업고 황하를 마주하여 험준한 지세에 따라 성곽과 보루 그리고 포대등을 건축하였다.성벽높이는 5메터좌우로 돌로 외벽을 쌓고 앞뒤에 벽체보호와 방탄호를 파고 부분적지대에 포대와 타구,사격구멍을 만들었다.영루는 벽체를 따라 만들고 포대는 성벽 높은곳에 설치하였으며 간격이 170m좌우로 매개포대에서 서로 한눈에 알아볼수있게 하였다. 오늘날 장성유적에 올라보면 여전히 그 옛날의 웅위로움과 전쟁의 포화를 느낄수 있으며 내외장성의 수축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다.외장성의 사호구,득승보,리민보,대동변벽5보루의 진변보,진천보,굉석보,진로보,진하보등 관액,관보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마찬가지로 내장성의 여러 큰 관액 또한 많은 촬영애호가와 호외운동애호가들의 마음속에 성지로 꼽히고있다.


“황하는 굽이굽이 서쪽으로 흐르는데 자새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선회만 하는구나” 명나라 최용의 시-“편두관”--- 이 시를 통해 편두관이 변방에서의 중요한 지위를 말해준다.서쪽편관하를 따라 황하곡지와 이웃하고 동쪽으로 노아산맥북단의 흑타산에 의지한 편두관은 지형이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아 편두관이라 불리며 일명 편관이라고도 하는데 명대<외3관>중 제일 서쪽관으로 <외관>의 전략적지위를 갖고있다.


평형관북쪽은 항산,병산,남쪽은 오대산산맥으로 해발1500m이상인데 이곳에 위치한 평형령은 바로 두산사이에 낮은 지형에 솟아있는 부분으로 그 지세가 매우 험준하다. 동에서 서쪽으로 한갈래 오랜 도로가 평형관성을 지나는데 하북평원북부와 산서가 서로 통하는 지름길로서 동쪽으로 북경서쪽의 자형관과 이어지고 서쪽으로 안문관과 잇닿아 서로를  연결해주어 견고한 방선을 이루며 북경서쪽면의 중요한 병풍으로 된다.항전시기의 평형관전역은 일본군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현재 평형관전역유적은 항일전쟁기념지로 되였다.


안문은 “천하9요새”의 제일로 꼽힌다.안문관은 “한명이 지키면 만명을 당하는”요새로서 “밖으로는 대동의 파수꾼이요 안으로는 태원을 지키는 열쇠로서 삼관에 뿌리박고 진나라의 인후가 된다”.안문관흥망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곳에서 발생한 전쟁은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더라도 140여차가 되며 실로 전쟁에서 군사가들이 서로 다투는 요새이기도 하다.녕무관은 “북으로 대동을 막고 남으로 태원을 누르고 서쪽으로 편관에 대응하고 동으로 안문을 지원하는”전략적작용을 하고 있다.성벽은 산세에 따라 만들어졌는데 그산세가 매우 험준하다.명숭정17년(1644년)에 이자성은 동으로 북경에 들어가기 위해 녕무관에서 명나라군대와 쟁탈전을 벌렸는데 역사에서 이를 “녕무관전역”이라 부른다.그때 3관총병 주우길을 격파하여 북경탈취의 장애를 제거하였다.


장성은 중국 역사상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역대 조대의 중요한 군사방어공정으로서 내지의 농경생산경제와 문화를 보호하였고 중화민족의 번영과 안정을 보호하였으며 중화문화가 세세대대로 전해지면서 계승될수 있도록 보호해 주었다.이는 바로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의 기타문명고국과 현저한 차이가 있는것이다.장기적으로 장성문화는 중국인민이 간고분투,단결일치,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발노력하며 모든곤난을 극복하면서 강적과 맞서 싸워나가며 곤난을 이겨내고 평화를 보위하는 장성정신을 지니게 하였다.이러한 정신은 세세대대로 전해지면서 오래도록 보완해가면서 전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보여준다.하기에 중국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등소평은 전세기80년대초 가장 관건적인 시기에 멀리 내다 보고 “중화를 사랑하고 장성을 보수하자”는 위대한 구호를 제출하였으며 인민대중들의 애국열정을 대대적으로 불러일으켰다